이주비 대출 '복병'…떨고 있는 정비사업장

입력 2022-11-03 17:36   수정 2022-11-11 20:03


서울 강남권의 A 가로주택정비사업 조합은 얼마 전 조합원들의 이주비 대출을 받느라 애를 먹었다. 올 상반기부터 시중은행에서 대출 제안서를 받고 협상을 진행 중이었는데, 최근 시장금리가 가파르게 오르자 은행 측이 급작스레 대출 이자를 종전보다 2%포인트 넘게 올리겠다고 통보해왔다. 당장 이주비 대출이 급한 A조합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대출 이자를 연 5%대 중반으로 올리고, 이주비 지급액 상한도 감정평가액의 40%로 낮추는 데 합의했다. A조합 관계자는 “이주 일정에 쫓겨 대출을 받긴 했지만, 당초 계획보다 늘어난 이자 비용만 수십억원에 달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잇단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주비 대출 이자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이 속출하고 있다. A조합처럼 이미 대출을 받은 조합들은 순식간에 불어난 이자를 감당하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일부 소규모 사업장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자금 경색으로 집단대출이 막혀 사업 지연 위기에 몰리고 있다.

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3차·경남’(래미안원베일리) 통합 재건축 조합은 지난달 조합원들에게 이주비 집단대출 금리 인상을 통보했다. 종전 연 2%대였던 이자가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에 가산금리를 더해 연 4.98%까지 올랐다. 조합 관계자는 “그나마 가산금리가 동결된 덕분에 대출 이자를 연 5% 밑으로 맞출 수 있었다”고 했다.

이주비는 조합원이 재건축·재개발 공사 기간 다른 집에 세 들어 살기 위해 필요한 전·월세 자금과 부동산 중개 수수료 등이다. 통상 조합 주선하에 조합원 개개인이 아파트 대지 지분 등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는 형태다. 대출 이자는 조합원 스스로 부담하거나 조합이 사업비를 들여 무상 지원하기도 한다.

시중은행과 이주비 대출 협상을 진행 중인 경기 광명시 광명동 ‘광명 11R구역’ 조합도 지난달 은행 측으로부터 대출 이자를 추가로 올려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충격에 빠졌다. 애초 광명 11R구역 조합과 은행 측은 코픽스에 1.48%의 가산금리를 더한 수준으로 대출 금리를 확정하려 했지만, 은행 측이 돌연 가산금리를 2.28%로 올리겠다고 요구해왔다. 그렇게 되면 현재 코픽스(연 3.40%)를 감안한 이주비 대출 금리는 연 5.68%까지 오른다.

조합은 은행 측에 0.80%포인트 추가 인상은 어렵다는 의견을 전달했지만, 은행이 이를 수용하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대출을 진행할 은행을 재입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지만, ‘레고랜드 사태’ 이후 은행들이 주택대출에 고삐를 바짝 죄고 있어 기존 은행을 대체할 곳을 찾기 쉽지 않다”고 했다.

지방에 있거나 규모가 작은 사업장의 분위기는 더 심각하다. 대구 동구 ‘신암 1구역’ 가로주택정비사업 조합은 지난 2월까지만 해도 연 2%대로 예상됐던 이주비 대출 금리가 연 6.56%까지 치솟으면서 사업성 악화 우려에 휩싸였다. 조합 관계자는 “사업 추진을 위해 금리 조건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사업성이 저하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대구 범어동 ‘삼일맨션’ 재건축 조합은 지난 8월부터 이주비 대출 은행 선정을 위한 입찰을 두 차례 했지만 모두 유찰됐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3~4년 전만 해도 은행들이 앞다퉈 이주비 집단대출을 제안했는데 최근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며 “1금융권은 물론이고 농협·신협 등 상호금융도 부동산 대출을 중단하면서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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